(커버 이미지: 서울혁신파크)
어제 퇴근하며 버스를 탔다. 대중교통에 앉을 자리가 있다면 책을 읽는 편이라 무의식적으로 책을 꺼내 무릎에 놓았다. 접혀 있던 44페이지를 펼쳤지만, 몇 줄 읽지 못하고 창문 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은평구의 풍경이 휙휙 지나쳤다. 티월드, 알파 약국, 행운세탁소. 별 볼일 없는 퇴근길임에도 내가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한 것은, 그날 공기 냄새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화창한 늦봄 날씨에 살랑이는 나무들. 서울 변두리의 모습이 괜히 사랑스러워서 나는 창문을 향해 얼굴을 내밀며 바람을 맞았고, 마침 이어폰에서는 2018년 여름의 추억이 담긴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이 모든 게 절묘하게 어울렸다.
서울에 대해서라면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 여기서 나고 자란 이야기나, 처음 서울을 떠나고 돌아왔을 때 이 곳이 얼마나 낯설었는지, 두 번째는 어땠는지, 세 번째는 어땠는지. 서울이 낳은 불량과 부끄러움은 무엇이며, 서울이 선물해준 맛과 찬란함은 무엇이고, 서울이 심어준 혼과 숨은 무엇인지. 난 아마 죽을 때까지 한국을 욕할 테고 또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이다. 서울에 관해서, 그러니까 부대찌개와 교복과 지하철에 관해서는 온 세상 사람들이 줄을 서도 끊임없이 대화할 수 있다. 요즘 한국 문학 번역에 흥미를 들였는데, 비슷한 맥락일까 싶다. 서울의 정서가 도대체 무엇인지, 나도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남들에게 꼭 설명해주고 싶은 것이다. 서울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더라도 서울을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 서울 사람인 나를 온전히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
우리 학교 예비 신입생이 SNS에 올린 글이 눈에 띄었다. 이런 메세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스탠포드 학생들에게: 우리는 9일째 이스라엘 공습을 견디고 있어요. 오늘 밤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몰라요. 가을에 스탠포드를 가지 못하게 된다면, 저를 기억해 주세요.” 유세프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학생이다. 2021년 5월 19일, 현 시점 가자지구 사망자는 219명이며, 이 중 61명은 아동이다. (유세프의 글은 인스타그램 @yousef_abuhashem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끔찍하다. 난 뉴스를 통해 가자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안전’으로 인식하고 있던 우리 학교의 울타리를 뚫고 뉴스가 난입했다. 영상을 통해 바라본 낯선 나라의 전쟁이 아니었다. 가을이 되면 나와 함께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후배가 오늘밤을 넘길 수 있을지 두려워하고 있다. 버스 창문 밖을 바라보니 나의 서울은 여전히 굳건하고 아름답게 서 있었다. 순간 다른 상상을 했다. 알파 약국과 행운세탁소 사이에 공습이 터지는 상상. 대기가 순식간에 파편으로 뒤덮이고 시야가 가려지는 모습. 주변에서 터져나오는 비명. 서울이 무시무시한 도박의 지대가 되는 상상에 나는 소름이 끼쳤고, 비현실적인 두려움이 나를 스쳐갔다. 다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것이 유세프의 현실이다.
나의 울타리가 위협될 때까지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 괴로웠다. 나의 울타리 밖에 있는 것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는 것은 평생 단련해야 하는 근육이고, 아직 이 근육이 약한 나는 울타리 밖의 것들을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내가 글을 쓰고 연극을 하는 이유도 결국에는 이것 아닌가.
서울을 사랑한다면.
서울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고, 추억이 깃든 장소들이 있고, 애증의 과거가 있고, 집이 있다면.
그 사랑을 이해한다면, 가자의 사랑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어 부끄럽지만, 적어도 그 사랑이 무참히 파괴되는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만일 서울이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서울을 사랑하는 내가 세계의 무관심과 미적지근한 방관을 마주한다면 얼마나 절망적일까.
연대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내 손은 그대로 44페이지를 붙잡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긴급 의료 단체를 지원하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