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멀어진 두 사람 사이의 연락을 ‘생존신고’라 칭한다. 한때는 사소한 이야기들부터 눈물의 하소연까지 공유했던 우정이, 시간이 흘러 서로 살아있는가 정도만 확인하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요즘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공부는 어려운지, 연애는 하는지. 이 정도 질문이 오가면 대화의 주제는 소진되고, 서로의 생존이 완벽히 신고되는 것이다.

처음 블로그를 만들었을 때는 매주 포스팅을 했다. 인스타에 올리기에는 너무 절절한 이야기들이 많았고, 그렇다고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순간순간의 생각과 깨우침과 감정이 많았다. 무언가를 느낀 후 글로 써야지만 비로소 몸에 녹아든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처음에는 꽤 성실히 임했다. 드디어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편했고, 독자들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깜깜한 동굴 속으로 외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져서인지, 하나둘 블로그를 읽기 시작하는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포스팅은 점점 뜸해졌고, 이젠 한 달에 한 번 올리는 것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

대학교 입학의 설렘이 가신 후, 나는 청소년기에는 몰랐던 ‘우정 유지’의 패턴에 눈을 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당연히 매일 만나던 친구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고, 방학이 겹친다 하더라도 일 년에 한두번 보는 정도가 정상이 되었다. 심지어 같은 대학을 다니는 동기들도 각자 하는 일이 바빠, 함께 듣던 수업이 종강한 이후에는 열심히 만나려고 해도 한 달에 한 번쯤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한 순간 같은 도시에 살고 있지 않는다면, 우정은 생존 신고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다 다시 재회하게 되면 또 신나게 떠들겠지.

난 긴밀하고 조용한, 뜻밖이고 필사적인 우정을 좋아하는데. 그런 연애같은 우정을 좋아하는데, 앞으로 그런 걸 느끼기는 계속 힘들어지는 걸까.

여러분은 모르시겠지만 제가 써놓고 포스팅하지 않은 에세이가 15개쯤 돼요.

성에 안 차거나 때가 지난 글들은 두고두고 컴퓨터에 묵혀놓을 예정이다. 원래 일기장처럼 다루려던 블로그는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나만의 기록 남기기’가 ‘남들에게 내 인생 보여주기’로 변질된 후로는 블로그 포스팅의 장벽이 높아졌다. 난 아름다운 글을 쓰려는 열망이 있다. 문장 단위의 미학을 추구하는 성격 때문에 한국어보다는 게속 영어로 쓰게 되고,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끄적여 놓고 보면 뭔가 세상과 공유하기엔 부족한 느낌이 든다. 뭐 이런 것까지 올려. 별 볼일 없는데.

그 때문에 잃어버린 글들이 너무 많다. 해질 무렵 버스 타고 한강을 건너며, 창문에 기대어 떠올렸던 문장들. 맛있는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는 길에 OST를 들으며 주인공이 된 척했던 순간들. 블로그에 담을 가치는 부족하다고 판단된 찰나의 파편이 몇 개나 될지 궁금하다.

가끔 반갑게 만나 밥 한 끼 먹을 친구들은 많지만 별 일 없이 전화해서 사소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친구들은 이젠 몇 되지 않는다. 이번주에는 비교적 큰 일이 생겼는데도 왠지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더라.

이젠 생존신고 정도의 글이라도 올려 기록하고 싶다. 보통 블로그에 뭔가를 올리면 인스타에 띄워 지인들께 알리는데, 앞으로 이런 글은 인스타까지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사소한 것들까지도 읽고 싶으신 분들은 구독을 해주세요.

생존신고 이상의 우정을 끌어안고 싶고, 생존신고 이상의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이 글은 별 볼일 없다. 생존신고니까.

요즘 저는 서울에서 다시 일할 준비를 하고 있고요, 공부는 안 하고요, 연애도 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