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감은 근로계약서를 쓸 때 오지 않았다. 개인 사물함에 칫솔을 넣었을 때 처음 느꼈고, 신발장에 내 이름이 붙었을 때 두 번째로 느꼈으며, 명함을 받았을 때 완전하게 느꼈다. 작년에 “@stanford.edu” 이메일이 생기고, 기숙사 방 문에 내 이름이 붙는 등 학교에 내 자리가 생길 땐 별 감흥이 없었다. 당연하게 여겨서일까? 학생 신분은 언제나 달아온 꼬리표니까.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쌀쌀하고 낯선 외계에 나를 초대한 행성이 있다니. 심지어 그 행성에서 나만의 책상과 의자를 내주다니. 역시 사람은 공간에 대한 집착이 크다.
유스보이스에서 인턴으로 출근한 지 어느덧 네 달이 되었고, 난 어제 마지막 퇴근을 했다. 다음세대재단에 소속되어 있다가 스핀아웃한 후 스타트업으로서 비영리의 세계를 헤쳐나가고 있는 단체이다. 청소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 및 운영하는 단체인데, 희귀 난치병 환우들을 위한 미술 수업이나 문화적 소외 청소년들을 위한 k-pop 수업 등 특이한 사업들도 여럿 진행하기 때문에, 인턴답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잔 업무를 맡는 과정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 참 다양하다.
‘사무실’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딱딱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의 업무공간은 따스하고 바람이 잘 들며 고양이들이 자주 놀러왔다. (보끼, 마리, 순대, 만두… 이름도 귀엽다.) ‘즐거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비영리 활동가들을 위한 공간’ 이라는 뜻의 동락가(同樂家)는 비영리 활동가 전용 공유오피스인데, 유스보이스 외 다음세대재단, 오늘의행동, WNC 등 다른 스타트업들이 입주해 있어서 일종의 비영리 커뮤니티가 형성된 공간이다.
나무바닥 위로 실내화를 끌며 걸어가는 소리. 바쁜 업무 중에도 고양이들이 오면 어김없이 창문으로 모여지는 눈길. 간식을 사오면 이웃집 떡 돌리듯 꼭 다른 스타트업들과 나눠 먹는 습관. 로망을 잃지 않은 병아리 인턴에게 동락가는 그런 공간이었다. 동락가 멤버들은 비영리의 숲을 만들어나간다 하여 ‘그루’라고 하는데, 난 아직 나무가 된 느낌은 못 받았다. 새싹이나 어중간한 덤불 정도로 치면 적합할 것 같다.
첫 출근하기 전 가장 긴장되었던 점들은 사실 업무 관련 문제는 아니었다.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맡을 수도 없었다. 오히려 이런 질문이 맴돌았다: 점심은 매일 같이 먹나? 가끔 점심시간에 다른 걸 하고 싶다면? 평소 입고 다니던 복장은 괜찮을까? 여기서 맺는 인연은 공과 사 중 지극히 ‘공’으로 봐야 하나? ‘사’의 선을 넘는 대화 주제는 어떤 것일까? 업무 관련 질문은 편하게 할 수 있는데, 오히려 그런 자잘하고 중요한 것들은 물어보기도 뭐해 상황이 일어나는 대로 몸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일 자체는 꽤 재미있었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데드라인은 일주일 간격으로 빠르게 다가왔고, 촬영현장을 꾸미기 위해 다같이 이케아로 쇼핑을 가거나 교육 보조를 위해 부천으로 가서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다양한 사건이 있었다. 무엇보다 소규모 팀이다 보니, 회사 자체의 방향성에 관한 고민에 참여하고, 모든 사업에 한 발짝 들여놓을 수 있어 좋았다. 난 아직까지는 진득하게 자리에 앉아서 한 일을 끝내는 것보다, 한꺼번에 여러 불을 지피고 태우고 넘어가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내 성격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모든 게 편하고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자신을 꽤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올해 한국에 돌아오면서 살짝 붕괴되었다. 항상 스펙보다는 필력이나 발표 실력이 나의 강점이라고 여겨 왔지만, 영어에 비해 떨어지는 한국어 어휘력은 면접할 때 내 말문을 막았고 자랑해왔던 블로그를 소개하기도 주저되었다. 한국어로는 심지어 유머감각도 떨어진 기분이었다. 쓰고 말하고 공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난 누구인가. 공부하며 사회의 보호를 받는 자리가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며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일 잘하는 사람’이 어떤 건지 감이 안 왔고, 그게 뭐든 나는 아닌 것 같았다. 이메일 하나 작성하는데도 쩔쩔매고, 기발한 아이디어도 못 내는 내 자신이 답답했으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게 두려웠다. 인정받는 것에 대한 내적 갈망을 보니 난 역시 아직 학생인가 보다.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듯, 업무마다 성적과 코멘트를 받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이 힘들지 않았던 건 온전히 유스보이스 팀 덕분이다. 대표님, 매니저님,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인턴님. 답답하셨을 순간도 있었을 텐데, 언제나 친절하고 밝게 대해 주셔서 막내로서 불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덕분에 ‘난 일을 너무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조금 조용해졌다. 코로나 때문에 팀과 제대로 마지막 회식을 하지 못하고, 마지막 일주일간을 재택근무해서 뭔가 김이 빠진 느낌이다. ‘짠’ 하고 끝나야 하는데. 야심찬 휴학 첫학기의 끝을 맺은 건데. 너무 좋은 인연이 된 이분들을 이제 자주 만날 수 없을 텐데. 유스보이스에서 나는 명확한 업무과 방향과 배움이 있었다. 앞으로의 몇 달간은 내가 내 자신에게 스스로 업무와 방향과 배움을 지정해야 하고, 어느새 닥쳐온 이 미래를 내다보니 가슴이 뛰는 만큼 피곤하다.
앞으로 동락가에서 어떤 활력 넘치는 일들이 벌어질지, 어떤 뜨거운 시너지가 이루어질지 더 이상 참여자이자 목격자가 될 수 없어 아쉽다. 아직 차마 단톡방을 나가지 못했다. 자주 놀러가고는 싶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될 리 없다. 하지만 유스보이스를 관찰하다 보니, 한 번 인연이 닿은 사람들은 조금 성장한 모습으로, 또 다른 시점에서 만나게 되더라. 나도 유스보이스와 함께하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면 좋겠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날에 대표님과 매니저님으로부터 받은 카드의 내용이다. 대표님께서 “많이 신경써주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네. 아직 초보 대표라서 그래”라고 쓰셨다. 카드를 읽자니 문득 비슷한 시기에 마무리된 연극 생각이 들었다. 나도 배우들과 팀원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컸다. 초보 연출이어서, 잘 챙겨주지 못해서, 더 배려하지 못해서, 더 즐거운 경험을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다들 일을 항상 100% 열심히 해 주지는 않았어도, 실수가 잦았어도, 함께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훨씬 컸다. 입장이 바뀐 느낌이었다. 나는 지난 학기 동안, 주중에는 신입이자 가장 막내로, 주말에는 연출이자 리더로 살았다. 이 둘의 관련은 생각보다 밀접했고, 신기한 상호작용이 있었다. 약간은 미친 롤러코스터에서 이제야 내린 기분이다. 그 두 가지 역할을 병행하면서 나는 어른이 되는 게 살짝 덜 두려워졌으며, 한국어로 일하는 게 살짝 더 편해졌다. 변화의 눈금은 미세하지만 확실하다. 아무튼 첫 사회경험이란 걸 해냈다. 한 단락에 마침표를 찍었다. 언젠간 멋진 에세이가 될 것 같다.
